영화포스터 이미지는 다소 잔인해서 다른 일러스트로 대체합니다 (잔인하긴 매한가집니다만 그나마..)
공포/고어영화계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헬레이져를 드디어 봤습니다. 저는 지나친 고어물까진 못 보는데, 이 헬레이저는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뭐 충분히 즐길만한 수준의 그로테스크함이었습니다ㅋㅋ
참신한 디자인의 크리처들을 감상하는 것만큼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어디까지가 불쾌하고 역겨운 것인지..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줄타기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물론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이/아름다움의 편이지.. 도를 지나친 것을 접할 때는 아주 기분이 상해버려요)
스토리도 중후반까지는 정말이지 너무나 흥미롭습니다. 남편의 남동생과 사랑에 빠져 바람을 피우는 여자와.. 남편과 전처 사이에 태어난 딸이 메인주인공인데,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이고 실험적인 연출들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어디까지나 영화 중후반까지ㅋㅋㅋ
용두사미 영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정말이네요, 후반부에 가서 왜그랬지? 힘이 딸렸나?.. 감독이 바뀌었다거나 제작당시에 뭔 일이 있었나...?...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후반 전까지의 흥미진진한 긴장감과 재밌는 컷연출들, 멋진 크리처들. 이것들만으로도 90분의 런닝타임이 그닥 아깝지 않은 멋진 영화였습니다.
왓챠에서 <28일 후> <28주 후>가 12/20일에 서비스종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좀비물을 좋아하는 저는 두 작품을 연달아 봤습니다.
전작인 <28일 후>는 정말 재밌게 본 수작입니다. 좀비물을 좋아하시면 한번쯤은 꼭 보시기를 추천해요.
반면에 후속작인 <28주 후>는.. 제 기준으로 2020년에 봤던 영화 중 최악이었습니다.
영화 도입부부터 나오는 한 부부, 그중에 남편 캐릭터(위 첨부사진의 남자입니다..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려) 는 절대 관객들에게 호감을 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도입부니까 그냥 말씀드리자면 이 남자는 좀비사태라는 위급상황에 멀리 떨어져있는 자녀들에 대해 별 걱정도 하지 않고, 좀비들이 쳐들어오는 위급상황에 아내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이기적인 캐릭터입니다.
관객들은 보통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인물에게 이입하기 마련인데,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제 한몸 건사하기 위해 혼자 튀는 선택을 하는 순간, 관객은 이 인물에게 더이상 이입하기를 거부합니다. (누구도 쓰레기같은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 인물에게 기대하는 건 '이 남자가 자신이 한 잘못의 대가를 어떻게 치를까' 겠죠.
그런데 영화는 진행되면서 점점 어이없는 전개로 빠지게 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선천적 면역체라 살아 돌아왔고 (자녀들에겐 엄마가 손쓸틈도 없이 좀비들에게 죽었다고 구라를 쳐놓은 상황에) 그 아내와 남편이 다시 재회하는 그 순간까지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영화는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 <-이런 반응, 그리고 '아니 굳이 이렇게 했어야 했나??' <-이런 반응... 그리고 이내 찾아온 것은 짙은 불쾌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 영화는 스토리의 진부한 틀을 깨부수고 참신하고 독특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나봅니다. 일반적인 극에서 탈피한 100% 그 너머의 리얼리즘을 보여주고싶었나봅니다.. (그렇게 할 거면 좀 잘하던가ㅡㅡ;)
현실적임을 추구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결국 영화는 극입니다. 창작자의 의도에 의해 제한되고 각색된 현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현실을 추구하겠답시고 약자들이 죄도 없이 싸그리 잔인하게 죽는 장면을 관객들이 보고싶어할까요?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태연하게 잘 사는 모습을 관객들이 보고싶어할까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끝내 한을 풀지 못하고 단념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보고싶어할까요?
그런 일은 현실에서 파다하게 일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영화에까지 그런 현실을 그대로 끌고 올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평면적인 선악구도를 고수해야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맡은 위치를 분명히 하고 어떤 설정과 전개가 이 인물에게 가장 적합한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막상 이 영화에서 선한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의 묘사도 굉장히 얄팍하여.. 이들이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걸 보고있어도 뭐 어쩌자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가끔, 보는 이들에게 감명을 주려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전개와 장면들로 관객/독자들을 현혹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장면을 연출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요.. 좋습니다만 그 장면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하고싶은 것이 뭔지, 그걸 전하기 위해 이것이 과연 제일 효과적인 방법일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든 지나치면 안 좋으니까요. 저도 늘 그런 자세를 경계하려고 합니다..